하이테크 신화가 싹튼 실리콘밸리를 찾아서 마이컴 90년 8월호

하이테크 신화가 싹튼 실리콘밸리를 찾아서 마이컴 90년 8월호
하이테크 신화가 싹튼 실리콘밸리를 찾아서 마이컴 90년 8월호

실리콘밸리는 단순히 지도에서 찾을 수 있는 한 지명이 아니라, 혁신과 창조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공간입니다. 이곳에서는 현대 기술 문명의 기반을 이룬 수많은 발명이 탄생했고, 하이테크 산업의 중심지로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장소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꿈과 도전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곳

세계에서 ‘아름다운 다리’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지나 산타클라라 방향으로 40마일쯤 달리다 보면 실리콘반도체가 만들어지고,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발명되었으며 퍼스널컴퓨터를 이 땅 위에 실현시킨 하이테크 신화가 싹튼 땅에 다다른다. 20세기로 접어든 이래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호세에 이르는 지역은 하이테크 산업의 요람이 되어왔으며, 특히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의 중간에 위치한 팔로 알토에 있는 스탠퍼드 대학교 공과대학은 실리콘밸리의 산파역을 담당하였다. 새로운 오디오 오실레이터를 디자인하고 현재 하이테크 산업의 기념비적인 존재가 된 휴렛-팩커드(Hewlett-Packard)도 알고 보면 스탠퍼드 대학교의 걸작품인 셈이다. 알토 태생인 이 두 친구는 초창기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야망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1906년, 리드포리스트는 에머슨가 913번지에서 3극(three-element) 진공관을 발명하여 그 집은 지금 ‘전자공학의 출발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또 실리콘밸리 태생이면서 트랜지스터를 발명하여 1956년에 노벨상을 받은 윌리엄스컬리는 고향으로 돌아온 후 게르마늄으로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1년 후 게르마늄보다 실리콘이 반도체를 만드는데 보다 좋은 소재임을 알고 8명의 스컬리 엔지니어는 회사를 나와 자신들의 회사인 페어차일드 반도체사를 세웠다. 페어차일드는 뛰어난 기술과 많은 공장부지, 스탠퍼드대학교의 지적인 분위기 등 실리콘밸리 특유의 천연자원, 그리고 벤처(venture) 자본을 이용하여 성공의 본보기가 되었다. 페어차일드는 또한 인텔(Intel),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데이비스(Advanced Micro Davices), 모노릭틱 메모리스(Monolithic Memories), 내셔널 세미컨덕트(National Semiconductor) 등 자회사를 설립하였으며, 이들의 회사들은 또 다른 회사들을 낳았다.

1971년 인텔에 의해 선보이게 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오늘날까지 실리콘밸리 경제를 흔들 만큼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또 칩 메이커는 아니더라도 유저그룹인 험블르 컴퓨터클럽(Homebrew Computer Club)은 퍼스널컴퓨터 초기에 가장 중요한 교육의 장으로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이곳에서 애플 I를 최초로 공개할 만큼 하이테크로 향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실리콘밸리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을 조이는듯한 많은 위협을 받게 된다. 부동산은 끔찍할 만큼 비싸고, 생활하는 데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곳의 공장들은 아직까지도 싼 임금에 매달리고 있는데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들에 비해 가난한 사람들의 많은 출현은 이 실리콘밸리를 멍들게 하고 있다. 더욱이 교통도 점점 더 나빠지고 있으니…

차로 다니는 실리콘밸리 여행

우리가 ‘실리콘’이라고 부르는 계곡은 지도상으로 보면 산타클라라 계곡을 말한다. 비록 지금은 사무실과 칩공장으로 뒤덮였지만 옛날에는 과일나무와 채소재배 농원이었던 평화로운 곳이었다. 자동차를 이용하면 좀 더 실리콘밸리를 속속히 알 수 있다. 간략하게 그려진 지도를 보면서 떠나보자. 우선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 101번 도로를 타고 가면 실리콘밸리의 심장부로 들어갈 수 있다. 여기서 우회도로로 빠지게 되면 비행접시가 이륙하기 위해 날갯짓을 하는 모양을 한 큰 건물을 볼 수 있다. 또 개인 캐드 컨설턴트 사무실을 마구 집어넣은 듯한 아주 조그만 사무실 공원과 맞대어 있는 칩 공장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빌딩들은 대개 살찐 소같이 비대한 모습들인데, 쿠퍼티노(Cupertino)로 내려가다 보면 한 길가 옆에 서있는 커다란 애플컴퓨터사를 발견할 수 있다.

북쪽 방향으로는 해군의 모페트 필드와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데이비스 빌딩이 빽빽이 들어차 있으며, 휴렛팩커드 등 다른 회사들도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큰 빌딩 사이에 들어서있는 작은 빌딩들은 유행어처럼 Xi, Techno, Semi, Compu, Digi와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신에게 기도한 후 ‘아멘’하듯 ‘System, Inc., ‘로 한결같이 끝맺음하고 있다. 공항을 따라 내려오다 보이는 강기 부라더 토마토 통조림 공장과 콘도미니엄이 들어서기 전에 노드 페어 오크(North Fair Oaks) 가를 따라 펼쳐졌던 과수원 등은 실리콘밸리의 옛 흔적들을 말해주고 있다. 페어 오크가 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실리콘밸리 현재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북쪽 101번 도로 웨들 드라이브(Weddle Drive)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어 라이언과 컴퍼스(Lion & Compass) 안쪽으로 나 있는 도로로 가면 정열적인 종업원이 마중 나올 것이다. 바에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는 동안 거래하는 왁짝지껄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실리콘밸리 모습의 한 단면이다.

컴퓨터 공장은 아니지만 빼놓을 수 없는 실리콘밸리의 명소

칩공장이나 컴퓨터 제조공장을 둘러보았다고 실리콘밸리를 모두 안다고 할 수는 없다. 풍부하고 다양한 실리콘밸리의 갖가지 음식점은 방문객들에게는 또 하나의 기쁨이다. 식사를 하면서 옆 테이블에 귀를 쫑긋 세우면 소프트웨어나 실리콘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장소로는 지도에 나와 있는 라이언과 컴퍼스를 비롯하여 오아시스(OASIS), 스코트 시포드(SCOTT’S SEAFOOD) 등 10여 군데나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전형적인 숙박시설로는 우아한 호텔, 침대와 와인을 곁들인 아침식사, 경치 좋은 해안의 모습을 연상시키지만 실리콘밸리에는 모텔 등 여러 종류의 숙박시설이 있다. 그중에서 날로 늘어나는 모펙트 필드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인기 있는 캘리포니아 모텔 스타일인 하이얏트 리키(HYATT RICKEY’S)와 애플사 뒤쪽에 위치한 튜더(Tudor) 구조로 사무실지역보다 조용한 큐퍼티노(CUPERTINO) 여관이 대표적이다.

실리콘밸리의 차고들은 퍼스널컴퓨터 역사상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곳이다. 팔로 알토의 에디 슨가 367번지는 현재 비록 나무로 만든 차고의 문이 축 내려앉아 있어도 1938년에는 데이비드 팩커드와 윌리엄 휴렛이 휴렛팩커드를 시작한 곳이다. 또 큐퍼티노의 크리스트 드라이브 2066번지 잡스 패밀리 차고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APPLE컴퓨터를 만들던 곳이다.

한편 이 외에도 실리콘밸리에는 놓칠 수 없는 곳들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실리콘밸리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하루 중 오전 11시와 오후 2시 30분 두 번 45분 동안 걸어서 캠퍼스 관광을 실시하는 스탠퍼드대학교, 여기서는 학교 건물을 비롯하여 70년대 초에 설치된 인공지능 실습실 컴퓨터에 의해 조종되는 역사적인 소행성 단말기가 있는 학생회관, 맑은 날이면 샌프란시스코전역을 볼 수 있는 후버(Hoover) 타워 등을 볼 수 있다. 또 테크마크(TECHMARK)는 실리콘밸리 외부 시스템 메이커들이 제품을 팔려고 할 때 이용하는 장소로 요란한 진열장으로 꾸며졌지만 양복차림과 정중한 말을 사용하며 조용하고 예의 바르게 장사를 하는 모습이 퍽 이색적이다. 테크마크에서는 갈륨비소 반도체 기술 등 하이테크 기술을 다루고 있는 책이 많은 서점이 있어 더욱 좋다.

실리콘밸리가 탄생시킨 테크노-키드(techno-kid)들

몇 해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들이 어른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들은 스탠퍼드 대학교 근처에 있는 조던 중학 학생들로 시간당 약 2천 원 정도의 강의료를 받고 있다. 그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떳떳하게(?) 자신의 실력을 통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컴퓨터 회사의 컨설턴트가 되어 보수를 받고 있다. 따라서 옛날 같으면 기껏해야 레모네이드 노점을 벌여 용돈을 벌던 아이들의 모습을 이제 실리콘밸리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아이들의 부모들은 대개 컴퓨터 산업에 종사하고 있어 프로그래밍을 익히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으며,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부모들도 이를 권유하고 있는 입장이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에 퍼스널 컴퓨터 없이 이사 오는 것은 외딴곳으로 자동차 없이 이사 가는 것과 같다. 물론 실리콘밸리 학교들의 컴퓨터 실습은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산호세의 윌리엄중학교는 학교 측이 컴퓨터를 설치해 놓지 않자 학부모들이 모금을 해서 설치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란 소위 ‘테크노-키드(techno-kid)’라 불리는 실리콘밸리 아이들은 겉으로는 별나 보이지 않으나 머릿속에는 과학과 첨단기술에 대한 것으로 꽉 차 있다. 또 컴퓨터에 대해서도 그들은 별 저항 없이 환경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던 중학교에서는 한 학생이 복잡한 프로그램을 완성하면 모두 몰려가 소리를 지르고 기뻐하며, 이 주인공은 축구 선수정도의 인기는 아니어도 컴퓨터를 다루는 여학생들의 호감을 받게 된다. 2년 동안 30만 명의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아타리사의 게임 담당자 크리스토퍼 클로포드는 이제까지 경험을 통해 절대로 한 가지 화제를 30초 이상 끌고 가지 않는다 한다. 만약 눈치 없이 30초를 넘기게 되면 종이뭉치가 날아다니고 더 계속하게 되면 속삭임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변하는 등 난장판이 되기 때문이다. 60년대 예언가 마샬 맥루한은 낡은 종족이 축구나 자전거 타기를 즐겼던 것처럼 새로 출현하는 종족은 일렉트로닉스 미디어에 정통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는 또 “그들은 모두 일렉트로닉스 시대가 낳은 사람들로 내일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테크닉을 익히고 있다. 멀지 않은 장래에 그들은 자신의 부모보다 외계인들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질 것이다.” 지금 그 예언이 ‘테크노 키드’에게 적중한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절도나 스파이짓도 서슴지 않는 범죄의 소굴

실리콘밸리에는 1,300개나 되는 크고 작은 컴퓨터 제조공장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하루에도 수 십 개의 회사가 설립되고 사라져 가는 이곳의 문명처럼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또는 돈을 벌기 위해 살구나무를 가꾸었던 온화한 양지바른 계곡은 이제 타락한 범죄의 소굴로 변해가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매년 2천만 달러 내지 1억 달러 상당의 칩, 회로기판 및 기타 부품이 절도당하고 있다.

‘Monolithic Memories’사 도난사건은 이제까지 실리콘밸리에서 발생했던 가장 큰 사건으로 이 회사의 재고량 중 20%인 3백50만 달러어치 칩이 도난당해 공급에 큰 타격을 주었다. 범인들은 훔친 칩을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 경계에 있는 스태트라인이라는 작은 마을에 옮겨 놓았으나 워낙 큰 사건이라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자 텍사스에 반출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회수되었다. 컴퓨터부품의 범죄는 전문 수사관들도 쉽게 발견할 수 없다. 오레곤주 포틀랜드시 작은 반도체공단에서는 범죄행위를 눈앞에서 놓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드나드는 차량을 검문하던 한 수사관은 한 트럭을 세우고 트레일러에 올라 안을 조사하였는데, 바닥에는 네모난 작은 조각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바닥에 깔려있던 이 작은 조각들이 수 천 개의 마이크로프로세서였고, 뒤늦게 이 수사관은 컴퓨터전문가의 설명을 듣고서 자신의 실수를 알게 되었다. 컴퓨터부품의 절도는 산업스파이에 비하면 그 손실은 아무것도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성공의 지름길은 신제품 발표 등 정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경쟁사에 빼앗겼다면 치명적이다. 따라서 어느 산업 못지않게 산업스파이의 극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느 날 팔로 알토에 있는 Varian사의 한 직원이 자기 회사의 구역 안에서 길 건너 휴렛팩커드사 본부 앞의 잔디밭에 서 있는 그 회사 부사장에게 플라스틱 접시를 날렸다. 어느 누구도 이 장난감 접시 밑바닥에 Varian사가 새로이 개발한 회로기판의 설계도가 붙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실리콘밸리에는 하루에 10~15개의 회사가 새로 생기기 때문에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회사 제품의 설계도 및 새로운 아이디어를 빼내어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돈을 받고 파는 행위가 자주 일어난다. 이에 대해 반도체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사람은 “실리콘밸리에서 회사끼리의 아이디어의 흐름을 법적으로 규제한다면 결국 실리콘밸리 전체의 문을 닫아버리게 될 것이다.”라고 한다.

한편, 실리콘밸리에는 특히 외국의 정부기관이나 산업체에서 노리는 대부분의 전자제품이 만들어지는 만큼 007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이곳의 기술을 염탐하여 본국으로 보내려는 외국첩자들도 많다. 기술 이전의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제품을 구입하여 분석하고 복사하는 방법인데, 미국이 전략물자를 판매하지 않는 소련은 위장하여 실리콘밸리에 침투하거나 유럽 등지에서 구입한다. 그렇다고 국제 컴퓨터 스파이 조직은 공산국가의 이야기만 아니다. 1982년 6월, 일본 히다찌와 미쯔비시가 실리콘밸리에서 IBM 3081 프로세서에 관한 정보를 빼내려다 FBI에게 덜미를 잡혔다. 두 회사는 기술 보안을 위해 FBI가 위장 설립한 산타클라라에 있는 컴퓨터 자문회사와 접촉하였는데, FBI는 IBM과 짜고 비밀을 넘겨주고 난 뒤 히다찌로부터 622,000달러와 미쯔비시로부터 28,000달러를 받는 순간 검거하였다. 이렇듯 실리콘밸리는 하이테크 기술만큼이나 이를 탐내는 사람, 국가들이 많아 각 회사마다 칩을 운반할 때 위장트럭을 내보내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지방수사국과 FBI, 상무성의 도움을 받아 기술 보안에 노력하고 있으나 범죄기술은 실리콘밸리의 기술만큼이나 지능적 이어 첨단 기술업체의 80% 이상이 매일 침해당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낸 눈부신 성과와 그 이면의 고민이 함께 녹아 있는 이곳은,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를 상징합니다. 이제 실리콘밸리를 떠올릴 때마다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열정과 창의력을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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