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는 단순하게 우리의 생활에 여러 가지를 자동화시켜 주었을 뿐 아니라 기존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되던 여러 분야의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문화의 영역인 영상과 음악 그리고 글과 그림 등 여러 작업에 능률을 상승시키고 그 질을 높여주었습니다.
컴퓨터가 가져오는 음악의 세계
아득히 먼 저편 어딘가에서 들리는 태고의 소리인 듯 아니면 원시림을 물리는 이름 모를 날짐승의 울음소리인 듯 굵고 묵중한 베이스톤의 흐느낌이 듣는 이에게 잔뜩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얼마를 흐르다가 불현듯 명경지수의 고요를 깨뜨리는 청량한 물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한 울 그리고 두 방울 그리고 세 방울까지 어느 사이 슬픈 계면조의 대금이 끼어들어 가녀린 연주를 하는가 싶더니 마침내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합주가 시작된다. 이 전통 클래식 반주에 맞추어 파격적으로 일렉트릭 기타가 재즈풍의 연주를 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박자도 없고 특정한 가락도 없이 연주된다.
나는 등록되지 않은 아이
컴퓨터 뮤직 기기로 가득 찬 결코 좁지 않은 방안에는 형광등 대신 따스한 느낌의 백열전구가 신시사이저의 흰건반들을 내리비추고 있고 대접받은 기피향이 봄비 내리는 창 밖 풍경과 어우러져 은은하다. 컴퓨터로 장난 좀 치다 보니 이젠 제 삶이 됐지요. 겸손이 몸에 밴 이 중년의 노신사는 음악감상에 반쯤은 넋이 빠져있는 기자에게 자신의 업적을 장난이라고 둘러대기 바쁘다. 중앙의 소파를 중심으로 벽면을 돌아가며 컴퓨터 음악에 관련된 각종 기기들이 호화군단처럼 자리 잡고 있다. NEC컴퓨터 8001을 필두로 대당 및 백만 원에 달하는 신시사이저만 여덟 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뒤에 그 설명을 자세히 듣게 될 샘플링기가 복잡한 조작 버튼으로 치장한 채 주인의 손때를 자랑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컴퓨터와 여러 가지의 뮤직용 주변기기를 연결해주는 미디 (Musical lnstrument Digital Interface)가 당연스럽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타악기 소리를 내주는 드럼머신과 전자기타도 눈에 띈다. 요즘은 청각적인 컴퓨터 음에 시각적 영상을 곁들이는 접목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방 한쪽에는 비디오카메라와 레코더 그리고 모니터가 있어 환상적인 영상을 뿌려대고 있었다.
5월 31일은 현재 이 공간을 매료시기고 있는 음악과 영상이 예술의 전당에 선을 보이게 되는 날이라고 한다. 그가 그날 발표하게 될 작품의 이름은 등록되지 않은 아이이다. 자신의 음악세계가 흔히들 말하는 장르의 구속을 받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 불인 이름이라고 한다. 팝이나 재즈에서 클래식이나 현대 전위음악까지를 아우르는 그의 음악성은 어느 한 분야를 굳이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쪽을 무작정 거부하지 않는다. 사실 그가 이렇게 벽 이 없는 음악을 추구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음악대학 근처에는 가본 적이 없는 철저한 자수성가 형이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다는 얘기다. 팝이나 재즈에서 클래식부터 현대 전위음악까지를 아우르는 그의 음악성은 어느 한 분야를 굳이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쪽을 무작정 거부하지 않는다.
통기타 하나에 젊음을 싣고
컴퓨터음악 전문가 이인성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해방과 더불어 귀국 우리나라의 남단 부산에 자리를 잡는다. 큰 부자는 아니었어도 한의사를 하는 아버님 밑에서 별반 부족함을 못 느끼던 그는 그러나 꼭 한 가지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어쩌다 먼발치서 바라다본 성가대나 합창단의 지휘자가 돼보고 싶다는 욕망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보리고개 시대였기 때문에 통기타는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곤 하였는데 그는 장안에서 소문난 기타리스트였으므로 그런 꿈도 가져볼 만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용기를 내 엄한 아버지 앞에 앉았다. 더도 덜도 말고 딱 5년 간만 음악을 하고 싶다고 소원 한번 만들어 달라고 했다. 통기타 하나에 몸을 싣고 혈혈단신 서울로 상경한 이인성은 5년이라는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에라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속칭 밤무대에도 서고 관철동에 있는 기타 강습학원에서 조교로도 일했다. 돈도 벌고 명성도 차츰 얻게 된 이인성은 자신의 이름을 단 기타 강습학원을 개설하기에 이른다. 이곳을 거쳐간 많은 대중 음악가 중에는 우리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사람도 많다. 또 당시에 그가 발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타 교본은 연속 매진을 기록하며 공전의 히트작이 되었다. 어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한겨울에도 군용 트럭 짐칸에 실려 공연을 다녔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그랬죠. 그러나 이런 말 나 안 하렵니다. 자기가 좋아서 한 일인데 누구에게 들어 달라 할 수도 없고 그랬죠. 그의 말은 여기서 이십여 년을 훌쩍 건너뛴다. 1979년 새롭고 신기하고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컴퓨터음악 세계를 노크하게 되는 얘기로 말의 물꼬를 돌린다.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이 컴퓨터음악 전문가로 변신
그가 기자에게 건네준 명함의 공식직함은 진해종합 고등학교와 진해 남중학교의 재단 이사장이다. 그러나 그는 근엄한 이사장으로서 보다는 컴퓨터를 가지고 장난치는 일이 훨씬 재미있다며 웃는다. 이미 1950년대 중반에도 신시사이저가 선을 보였었죠. 성능은 지금보다 떨어졌지만 그 크기가 집채 만해서 운반과정에 서 열차를 개조해야 할 정도였어요. 그러나 소리는 뭐 그렇게 신통치도 않더군요. 그리고 얼마 있다가 로버트 무그가 개발한 무그 신시사이저가 세상에 나왔다. 이전보다 작고 값도 저렴한 이 기계의 탄생은 컴퓨터음악의 하나의 붐을 가져왔다. 그래도 생업을 그만두고 뛰어들 정도의 매력은 못 느꼈던 듯 애써 외면하며 교육사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드디어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고야 말았다. 명실상부한 컴퓨터음악용 기기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가만히 앉아만 있을 그가 아니었다. 그때가 1981년의 일이었으니 만 십여 년을 컴퓨터음악과 함께 살아오고 있는 셈이다. 치음에 구입한 애플컴퓨터인 CMU-800이 동기신호방식을 이용한 당시로서는 첨단이라 불릴 만했지만 음색변화나 특수효과를 낼 수 없어서 지금으로 보면 전자오락실에서 들리는 기계음에 불과했다고 한다. 지금 가장 애용하고 있는 NEC-8001과의 조우가 본격적인 컴퓨터음악 전문가의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이 컴퓨터는 신시사이저 16대를 동시 연주할 수 있으며 12000여 개의 음표를 수록할 수 있다. 게다가 전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NEC는 음표를 이용하기 나 숫자로도 작곡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음의 강약이나 장단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만 가지고 컴퓨터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특히 미디의 역할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데 그만큼 악기와 악기를 연결시켜 주는 통역관으로서의 미디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현재 컴퓨터음악이라고 불리는 모든 음악들을 미디 컨트롤 뮤직이라고 불리길 원하고 있다.
컴퓨터음악에 비디오 영상을 곁들이고 싶어
여기서 잠깐 몇 가지 기기들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기로 하자. 먼저 신시사이저(Synthesizer)란 어떤 기계일까? 영어 명칭 그 자체의 의미대로 음을 만들어내는 음 합성장치인 이 기기는 대금 연주소리 나 천둥 번개 치는 소리 새의 지저귀는 소리 등을 참조해 낼 뿐 아니라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기존의 여러 악기들의 소리도 재현해 낸다. 이렇게 만들어낸 인공 합성음은 신시사이저 자체 내에 3.5인치 디스켓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다가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작곡할 때 곡에 삽입되어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키 조작으로 가능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CD롬을 지원하는 종류도 시중에 나와 있다고 한다. 또 샘플링기라고 불리는 SampIer가 있어서 이 기계를 이용하면 한 가지 음으로도 합창곡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그의 말에 따르면 실제 악기의 음색을 내고 싶을 때는 신시사이저에서 나오는 디지털 음색보다 더욱 자연음에 가까운 소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드럼머신은 악보만 주컴퓨터로 넣어주면 신나는 타악기의 경쾌한 리듬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며 간단한 드럼 연주를 즉석에서 작곡해 들려준다. 서울예술전문대로 컴퓨터음악 강의를 위해 출강하고 있는 그는 그러나 얼마 전에는 학원에서 강의를 듣는 수강생의 신분이었던 적이 있었다. 젊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비디오학원에서 초로의 이인성은 영상에 대한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익혔다. 상식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지만 아저씨도 비디오 촬영 기술을 배우느냐며 원생들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던 그는 음악에 영상을 접목시키려는 정열 하나로 전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디오카메라를 메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녀요. 때로 채취하기 어려운 장면은 TV에서 따내기도 하고 해서 컴퓨터음악과 합성을 시키죠. 아직은 음악이 먼저고 영상은 나중입니다. 그가 보여주는 이미지 처리를 한 영상과 음악은 가히 시청각적 매체의 위력을 실감케 해주고 있다. 이른 새벽 산안개가 숲 사이를 매만지듯 스치고 지나가거나 붉은빛 갈대무리가 바람에 흔들릴 때 컴퓨터음악은 적절한 선율로 이 모든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움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이 정도로도 부족해서 요즘은 컴퓨터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위해 나름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같은 칼럼에 서울대의 강석희 교수가 소개된 적이 있다고 기자가 말하자 그는 그분에 내가 어떻게 비길 수 있겠냐며 예의 겸손을 보이면서도 아카데미에서 하는 컴퓨터음악과 자신처럼 밑에서부터 공부해 온 사람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하루 일과의 거의 전부를 방 안에서 컴퓨터와 놀아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기쁨과 음악에 대한 매력 때문에 하루가 짧기만 합니다. 요즘은 전농패(전자악기로 장난치는 패거리라는 뜻)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이 단체가 바로 오월의 마지막 날 발표회를 갖는다고 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그의 재떨이엔 타다 남은 담배꽁초가 수북하다. 마지막 일성 싶은 담배를 붙여 물며 그는 젊은 사람들을 주축으로 점점 확산되어 가는 컴퓨터음악을 보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어떤 이는 음악을 흉내 낸 것일 뿐 인간의 냄새가 나지 않는 사이비 음악이라고까지 말합디다. 그러나 예를 들어 여기 작곡공부를 하는 학생이 있다고 합시다.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들어보고 수정 편곡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공부가 되는데 현실적으로 컴퓨터 없이는 불가능하거든요. 물론 컴퓨터음악이 음악의 전부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 기능과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은 막힘이 없다. 이제 장비 가격도 많이 내리고 어느 정도 대중화도 진전되고 있지 않습니까? 비용에 너무 겁내지 말고 마이컴 독자들도 컴퓨터음악에 과감히 도전해 봤으면 합니다. 저는 길을 닦아 놓을 따름이고 젊은 사람들이 힘차게 달려가야죠. 풍뎅이 모양의 자그마한 독일제 폴크스바겐을 타고 다니며 방안에 아늑한 조명시설도 갖추어 놓을 줄 아는 결코 늙을 것 같지 않은 컴퓨터음악가 이인성을 보았다. 봄비를 맞으며 사진기자에 포즈를 취해주는 그의 귓가 흰머리와 목덜미 께오 드러난 젊은 사람들이나 입을 법한 영문 찍힌 하얀 티셔츠가 인상 깊다. 여러 장비의 발달로 인해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왔습니다. 그만큼 컴퓨터라는 장비로 인해 어떻게 보면 예술의 세계가 더 대중화되고 더 깊어졌다고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