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부엌 마이컴 90년 8월호

21세기 부엌 [마이컴 90년 8월호]
2세기 부엌 마이컴 90년 8월호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20세기에는 21세기를 먼 미래라고 생각하고 여러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이처럼 20세기에 21세기의 건축에 컴퓨터가 활용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기사 자료가 있어서 가져와 봤습니다.

아람이 엄마의 외출

외출 준비를 하는 아람이 엄마의 손길은 바쁘기만 하다. 오늘은 근 한 달 동안 고민해 오던 부엌을 마침내 바꾸기로 결정하고 설계하러 가는 날이다.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가서 직접 설계를 하고 부엌을 다시 꾸민다고 생각하니 어젯밤에는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그동안 아람이 엄마는 두 돌이 막 지난 개구쟁이 아람이를 돌보랴 시어머니 모시랴 또 야근 잦은 전산실에 근무하는 남편 건강에 신경 쓰랴 하루도 한가로울 때가 없었다. 더욱이 아파트로 이사 온 후에는 평수에 비해 유난히 좁은 부엌이 아람이 엄마를 지치게 만들었다. 벽과 딱 붙은 가스레인지는 음식 만들 때마다 벽에 찌꺼기를 묻히고 음식 만들기와 상관없이 설치된 작업대는 부엌에서 식사 준비할 때마다 짜증스러움을 더해주었다. 대학 동기동창이었던 남편과 함께 을지로에 있는 대리점에 간 아람이 엄마는 30분이 채 안되어 꼭 마음에 드는 부엌설계 도면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단 하루 만에 부엌이 만들어졌다.

다용도실 때문에 한쪽 모서리가 튀어나와 냉장고 놓을 자리조차 애매하고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던 예전 부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새로워진 부엌이 절로 미소 짓게 하였다. 거실의 분위기에 맞게 부엌 가구도 회색으로 정해 통일감이 들어 더욱 산뜻해 보이며 틈 하나 없이 배열된 작업대는 물기나 이물질이 스며들어 부패되는 일이 없고 바퀴벌레 격정도 사라지게 하였다. 또 미식가인 남편이 음식자랑 하기에도 훨씬 손쉬워 보는 이의 마음도 편안 해졌다. 이처럼 네모나지 않고 울퉁불퉁한 아람이 엄마의 부엌이 어느 레스토랑보다도 아늑하고 3살 난 아람이부터 시어머니 남편까지 거실보다는 부엌을 더 찾게 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바로 부엌의 크기나 식구의 생활 방식에 맞게 설계를 한 컴퓨터 덕분이다.

주부에게는 일하는 기쁨을 가족에게는 생활의 즐거움을

과거에는 식사 준비 만을 위한 비위생적인 공간으로 여겨지던 부엌이 현대에 와서는 각종 기기 등 최고의 다양한 시설이 갖추어지고 식사 준비뿐 아니라 세탁이나 바느질에서 가족의 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그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주부를 비롯한 가족 전체가 하루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생활공간으로 자리 잡힌 부엌은 이제 합리성과 편리성을 고려치 않고 설계되어서는 그 역할을 다 할 수 없게 되었다.

만약 작업 동선을 고려하지 않고 작업대를 배치하거나 작업 면적 수납공간 등이 부족하게 만들어졌다면 그 부엌은 필요 이상으로 주부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며 피곤하게 만들 것이다. 실제로 한 연구보고에서는 부엌 설계를 이상적으로 하면 주부의 작업량이 40배나 줄고 작업시간이 25배까지 절약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손님용 식기를 찾으러 다락에 가거나 보관할 곳이 없어서 그대로 박스에 넣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계란이나 조금이라도 큰 행사를 치르려면 부엌바닥이나 마루로 그릇들을 온통 늘어놓아야 하는 일들은 흔히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부엌의 설계는 단순히 편리한 작업을 위해서 만도 아니고 위생적인 환경을 위해서 만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위한 것 만도 아니다. 그 안에서 생환하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맞게 꾸며짐으로써 단란하고 즐거운 생활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이러한 이상적인 부엌을 설계할 때에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먼저 부엌은 집안의 모든 생활영역 특히 거실이나 식당과 같은 가족 공동의 생활공간과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가족의 생활을 파악하며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알맞은 부엌의 형태를 골라야 한다. 둘째로 가족 관계의 구심점인 주부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엌은 가족들과의 원활한 관계가 이루어지며 쉽게 모일 수 있는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곳에 위치해야 한다. 셋째로 부엌 작업대는 복잡한 조리 작업의 흐름을 고려하여 준비대와 싱크대 그리고 수도와 조리대를 지나 가열대와 배선대의 순서로 배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또한 능률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준비대와 싱크대 및 가열대의 세 기본 장소를 중심으로 삼각작업 동선을 이루어야 한다. 넷째로 밝고 환한 부엌과 불쾌한 냄새가 없는 부엌은 즐겁고 쾌적한 부엌의 중요한 조건이다. 창은 되도록 크게 하며 볕이 잘 드는 방향으로 싱크대 앞에 위치하게 하고 전체 조명과 작업대를 밝히는 국부 조명을 함께 갖추는 것이 좋다. 또 음식이 가열되는 동안 나는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레인지 후드나 환기팬을 반드시 설치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엌에는 집안 살림 중 가장 많은 종류가 집합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과학적인 수납 계획에 따른 충분한 수납공간이 필요하다. 주부의 일손을 편리하게 도와줄 수 있도록 크기와 용도에 따라 다양한 수납공간을 마련하면 편하고 깔끔한 부엌을 유지할 수 있다.

손으로 하는 부엌설계와 컴퓨터로 하는 부엌설계

부엌 크기만 말면 단 10분 내로 설계가 끝나는 컴퓨터 부엌설계는 소비자나 설계자 모두에게 편리하다. 손으로 설계할 때는 이틀이나 사흘이 지나야 겨우 한 개의 설계도면이 완성되었으나 컴퓨터로 설계하면서부터 차 한잔 마시고 기다리는 동안 소비자들의 부엌에 알맞은 수십 종의 설계도면이 작성되고 완성된 도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마치 기성복을 고르듯이 마음에 드는 부엌을 선택할 수 있다. 만약 설계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도 손으로 며칠 동안 고생해서 그려온 것은 거절하기가 미안하며 막상 부엌을 바꾸고 싶어도 선뜻 설계 맡기기가 부담스럽지만 짧은 시간 동안 컴퓨터 화면을 통해 설계 도면을 받으면 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다. 또 회사도 서비스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부엌가구로서 처음으로 컴퓨터 설계를 시작한 한샘의 장건호 소장은 “부엌의 종류에 따라 또 사용하는 가구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선택에 따라 그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예전 같으면 저희가 이상적인 부엌설계를 해도 소비자들의 예산에 맞추다 보면 2번에서 3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야 하므로 적어도 설계하는 데만 3에서 4일은 족히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같이 앉아서 상의해 가며 가구를 추가하고 삭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즉시 가격이 나오므로 소비자들도 눈으로 직접 확인해 가며 설계할 수 있어 아주 쉬워졌습니다.”라며 소비자들과의 원활한 의사 교환을 하는데도 컴퓨터가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또 설계도면만 가지고 완성된 부엌을 상상했다가 막상 부엌이 완성되었을 때 다른 모습에 항의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으나 컴퓨터로 설계한 후 이를 이용해 3차원 투시도는 물론 평면도나 좌 우 측면도 혹은 입면도 등을 보면서 컬러까지 선택할 수 있어 설치 후의 부엌을 상상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결국 CAD를 이용한 컴퓨터 그래픽 작업의 발전이 건설이나 인테리어 현장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이를 통해서 설계자나 작업자나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보다 더 발전하여 비스포크와 같이 소비자가 직접 고를 수 있는 디자인 가구와 가전제품도 나오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더욱 발전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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