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연설 마이컴 90년 8월호

엉터리연설 마이컴 90년 8월호
엉터리연설 마이컴 90년 8월호

통신과 인터넷의 발달은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이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국제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핵심적인 기술입니다. 지금은 일상에서 이런 일들이 너무도 당연히 여겨질 만큼 통신이 발달하였으나 과거에는 국제 전화만으로도 놀라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전자네트워크 회의에서

지난 5월 미국에서 전자네트워크 회의가 열렸다. 우리나라가 이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따라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5분 정도 연설을 해 달라는 부탁까지 받게 되었다. 첫 참석에 무슨 거창한 연설이냐고 사양하다가 마침내 하기로 결정, 준비도 안 된 상태여서 본의 아니게 연설을 하게 되었지만 준비가 미비해서 연설은 엉터리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엉터리라도 반응이 의외로 좋아 이 회의는 내게 아주 기억할 만한 일로 남아있다.

회의나 연설이라고 해서 우리들이 보통 하는 것처럼 굳이 딱딱하거나 거창할 필요는 없고 여유 있고 유머스러운 연설이 때로는 잘 먹힌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기회였다. 독자 여러분들도 자기만의 향기를 낼 수 있는 특유의 유머스러움을 갖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래의 글은 회의에서 했던 연설 내용이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제 이름은 유경희입니다. 성이 ‘유인데 영문자로는 Y.U.라고 씁니다. 제게는 중국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이름은 셰밍제입니다. 영어로 표기할 때 그의 성은 쉬(SHE)라고 씁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나를 중국 사람인 내 친구로 잘못 알고 “미스터 쉬”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내가 시밍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나는 쉬(SHE)가 아닙니다. 쉬(SHE)는 그(HE)입니다. 그러고 나서 “나(I)는 유(YU)입니다.” 한글이나 중국어를 영어로 옮기다 보니까 생긴 재미있는 일이었지요.

파리의 시내에서

2주 전에는 파리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로 날아갔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던 중에 나는 음식점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생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걸 먹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생 것으로도 굴을 잘 먹기 때문입니다. 자신 있게 상점 안으로 들어가기 까진 했는데 들어서고 나서야 내가 프랑스 말을 한마디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프랑스 글로 쓰인 메뉴판에서 읽을 수 있는 글자라고는 단지 세계 공통의 아라비아 숫자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주문을 하긴 해야 했고 외국어는 비슷한 글자가 많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영어 단어처럼 굴이 오(O) 자로 시작하리라고 생각하고 메뉴에서 O자로 시작하는 것 하나를 골라 웨이터에게 물었습니다. “이만한가?”라고, 웨이터의 대답은 “위(oui-우리말로는 ‘예’라는 의미)”. 또다시 “껍질이 있습니까?” 웨이터 답변은 역시 “위(oui)”. 그래서 바로 주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입맛을 다시며 먹으려고 받아본 건 생굴이 아니라 달걀, 굴을 먹기 위해 키워드를 3개나 써서 검색을 했는데도 출력된 내용은 잘못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정보 검색을 위한 키워드는 신중을 기해 정확한 것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또 한 번 입증된 셈이지요.

최초의 국가 간 가족채팅

파리회의가 끝난 뒤 바로 ‘네트워킹 포럼 90’이라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인 네트워커 15명을 대동하고 개최지인 일본으로 갔습니다. 이 회의 도중에 참가자의 한 사람인 조현성 군이 호텔방에서 서울에 있는 그의 형과 채팅을 했는데 아마도 이것은 최초의 한일 간 가족채팅을 한글로 한 경우일 것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곧장 샌프란시스코로 왔습니다. 그저께 저녁에 나는 서울에 있는 아들놈과 호텔방에서 채팅을 했습니다. 이것도 한미간 최초의 한글로 한 가족채팅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나 기록을 만든 셈이지요.

아들놈은 “막내가 오늘 운전면허시험 쳐요.” 바빠서 끝까지 듣지 못했는데 동료가 대신 알아본 바에 의하면 우리 아들이 낙방을 했다고 합니다. 서운하기도 했지만 아들놈이 차 사는데 도움을 줄 일을 또 한 번 미룰 수 있는 행운을 얻은 셈이지요. 이렇게 통신은 멀리 다른 나라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가족의 모든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어 서로 간의 화목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영어로는 정보를 인포메이션(Information)이라고 하지만 정보는 여기 한글로 푸는 것이 더 통신가 들에게 잘 들어오는 듯합니다. 우리들끼리는 정보란 ‘정을 주면 보답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자네트워크 회의에 참여하면서 전자네트워크는 ‘정을 주면 보답을 받는 길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한 마디 추가한다면 “전자네트워크는 좋은 정보만을, 감사합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연설문이었다. 당초 회의장에서는 장소가 미국이니만큼 이것을 영어로 말했는데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 두었다가 이것을 우리말로 옮겨 본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산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많은 정보를 통해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한정했을 때는 더 많이 바빠지고 복잡해진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정보를 어떻게 컨트롤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인생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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