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는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끄는 핵심 장치로, 복잡한 계산과 방대한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중에서도 CRAY 시리즈는 슈퍼컴퓨터의 역사를 대표하며, 각 시대마다 기술적 혁신을 선도해 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CRAY 시리즈의 발전 과정과 주요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CRAY-2
슈퍼컴퓨터하면 우선 CRAY가 생각날 정도로 그 대표적 역할을 다한 것이 미국 크레이 서치사의 CRAY 시리즈다. 1988년 말을 기준으로 전 세계에는 약 300대의 슈퍼컴퓨터가 보급되었는데, 그중 64%가 크레이 리서치사의 CRAY 시리즈가 차지하고 있다. 물론 1988년에 도입된 국내 유일의 슈퍼컴퓨터 CRAY-2S 역시 크레이 리서치사 제품, 이 번호에는 슈퍼컴퓨터의 주류인 CRAY 시리즈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슈퍼컴퓨터와 함께 길을 걸어온 ‘크레이’박사
크레이 리서치사의 창시자 ‘시머 R 크레이 (Seymour R Cray)’박사는 CRAY-1, CRAY-2, CRAY-3의 설계 개발자로 그는 원래 유니백(Univac) 사의 기술자였다. 그러던 그가 세계 최고속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 1957년, 다른 기술자와 함께 CDC사(Control Data Corporation)를 설립했다. 1964년, CDC사가 개발한 CDC6000은 최대 처리성능이 약 1메가플롭스(MFLOPS:Mega Floating Operation Per Second:1초 당 부동소수점 연산 수) 정도였지만 고속화를 위해 파이프라인처리(Pipeline Processing: 연속된 데이터나 명령에 대해 여러 개의 실행을 동시에 행하는 방식)를 사용하는 등 현재의 슈퍼컴퓨터와 같은 사양을 갖고 있었다. 그 후 CDC7000/6600/7600 등을 개발, 기상예측을 비롯한 과학기술계산용 컴퓨터 시장을 서서히 넓혀갔다.
1974년, 최대처리성능 100메가플롭스의 CDC Star-100(후에 CYBER-203으로 개조되었음)을 개발했는데, 처리속도를 높이기 위해 설계를 완전히 다시 했다. 이런 까닭으로 기존의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크레이’박사는 이러한 설계방식 변경에 반발, CDC사를 떠나 1972년에 4명의 동료와 함께 크레이 리서치사를 설립했다. 이것이 현재 슈퍼컴퓨터업계의 선두주자를 달리고 있는 크레이 리서치사의 창설이었다.
크레이박사의 8 각기둥 CRAY-1
1976년에 발표된 크레이 리서치사의 최초제품 CRAY-1은 종래의 스칼라(Scalar: 길이나 부피처럼 방향에 관계없이 나타낼 수 있는 양) 연산에 덧붙여 복수의 계산프로세스를 벡터(Vector: 속도나 힘처럼 크기와 방향을 가진 양)화 함으로써 보다 빠른 속도로 연산을 할 수 있는 벡터처리 기구를 갖추고 있다. 이것은 지금도 대부분의 슈퍼컴퓨터가 사용하고 있는 고속화 기술이다. CRAY-1은 1사이클(Cycle)이 12.5 나노초(nanosecond: 10억 분의 1초)라는 당시 최고의 클럭주기를 가진 단일 프로세서를 사용하였으며 최대처리성능 160메가플롭스를 달성했다. CRAY-1이 발표되자마자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구입하는 등 공립기관을 중심으로 그 시장을 넓혀갔다. 이것은 유저가 당시 높은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던 CDC 6600/7600과 호환성을 갖고 있지 않았던 CYBER-203보다는 CRAY-1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 후 유저 수가 증가한 CRAY-1은 점차 슈퍼컴퓨터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CRAY-1은 네트워크환경과 주변기기에 대응하기 위해 I/O서브시스템을 확장한 CRAY-1S를, 바이폴라(Bipolar: 양극) 소자를 보다 값싼 MOS소자로 바꾼 CRAY-1/M로 각각 버전 업되었다.
민간용 슈퍼컴퓨터의 베스트셀러 CRAY X-MP
1982년, 크레이 리서치사는 CRAY-1의 아키텍처를 이어받아 CRAY X-MP를 개발했는데, X-MP는 최대 4대의 프로세서(클럭주기 8.5 나노초)가 병렬로 가동되는 최초의 멀티프로세서 슈퍼컴퓨터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 시리즈는 최소구성인 X-MP/1S에서부터 X-MP/4까지 1~4대까지의 프로세서구성을 선택할 수 있으며 최대구성의 경우 CRAY-1보다 약 10배 빠른 처리속도를 자랑하고 있다. 이러한 슈퍼컴퓨터가 석유탐사에 응용되는 등 막대한 지질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되자 1984년 일본 NTT 및 도시바에서 X-MP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X-MP는 CRAY-1의 후속기종인 CRAY-2가 개발된 후에도 계속 버전 업되어 민간용 슈퍼컴퓨터의 베스트셀러로 되었는데, 현재 가동되고 있는 CRAY 시리즈의 60% 이상이 X-MP 시리즈이다.
새로운 기술로 화제 뿌린 CRAY-2
1985년, 진정한 의미에서 CRAY 시리즈의 2번째 작품이라고도 할 CRAY-2를 발표했다. 이 CRAY-2는 2대 또는 4대의 프로세서(클럭주기 4.1 나노초)가 병렬로 가동되는 시스템으로 최대 처리성능이 약 2기가 플롭스(GFLOPS)였으며 복수의 프로세서를 사용함과 동시에 기판전체의 집적도를 높임으로써 소형화가 가능하였다. 고밀도 기판 집적기술은 배선거리 단축이라는 슈퍼컴퓨터의 고속화에 꼭 필요한 기술로서 CRAY 시리즈는 처음부터 배선거리를 단축했기 때문에 그 후 CRAY 시리즈의 특징이라고 할 8 각기둥의 한 변이 없는 C형 스타일을 사용하였다. 기기간의 거리를 최소로 할 경우 이상적인 배치는 원형이 되지만 그렇게 되면 내부의 배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CRAY 시리즈는 위에서 보면 원형에 가까운 8 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빠진 한 변은 배선과 유지를 위한 공간으로 된다. 그런데 기판의 밀도를 높임으로써 각 기판에서 발생하는 열이 커다란 문제가 되는데, CRAY-2에서는 8X8X12-768개의 IC로 구성되는 2.5X10X20cm의 모듈이 최대 336개 사용되었다. 이것이 직경 135cm, 높이 114cm의 본체에 내장될 경우 소비전력은 300~500W가 되므로 그 발열량은 실로 엄청나게 커진다.
슈퍼컴퓨터의 대부분은 오늘날의 PC와 마찬가지로 공랭식 시스템 또는 냉각수가 지나가는 파이프가 기판에 매장된 냉각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CRAY-2에서는 기판 전체가불화 탄소액체에 잠기는 독자적인 냉각장치를 사용하였다. 이 냉각액은 완전히 불활성(다른 물질과 화합하지 않는 것)으로 온도에 따라 변하지 않는 화합물이다. CRAY-2에서는 950리터(Liter)의 액체가 매초 2.5cm로 칩(Chip) 사이를 흘러 온도 상승에 의한 칩의 불안정 및 온도변화에 의한 칩의 파손을 방지하고 있다. CRAY-2는 후에 SSD(반도체기억장치)를 장착한 CRAY-2/S로 변신, 현재까지 최강의 슈퍼컴퓨터로 자리 잡고 있다. S/W측면을 보면 1986년에 CRAY 시리즈 전기종에 걸쳐 공통된 OS(Operating System)인 UNICOS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UNIX System V에 기초를 둔 회화형 OS로 그때까지는 COS(Cray Operating System)라고 불리는 전용 OS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처럼 일반적인 UNIX를 사용함으로써 S/W면에서의 충실을 거하게 되었다.
18대의 프로세서가 병렬로 가동되는 최고기종 CRAY_Y-MP
최고의 성능을 이룩하기 위해 대단히 비싼 기총이 되었던 CRAY-2에 대해 X-MP의 후속기종을 바라는 유저도 적지 않았다. 이를 위해 크레이 리서치사는 1988년 X-MP의 후속타자인 Y-MP를 개발했다. Y-MP는 최대 8대의 프로세서(클럭주기 6 나노초)가 병렬로 가동되며 최대 처리성능은 CRAY-2를 능가하는 4기가 플롭이다. 그리고 기판의 집적도를 보다 높이기 위해 CRAY-2와 비슷한 불화탄소 액체에 의한 냉각방식을 사용하였다. 단 Y-MP에서는 기판의 모듈화가 발달, 냉각액에 기판이 잠기지 않고 각 모듈에 냉각액을 파이프로 보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Y-MP는 SSD라는 보조기억장치를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속 액세스 속도를 가진 메모리로 보조기억장치로의 액세스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대규모 계산에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외에도 X-MP의 개량형인 X-MP EA/se의 3 모델이 있는데, 이것은 1대의 프로세서(클럭주기 8.5 나노초)와 352메가플롭스로 되어있으며 Y-MP와 완벽한 호환성을 자랑한다.
차세대 CRAY 시리즈
1989년, 크레이 리서치사는 자회사 크레이 컴퓨터사를 설립했는데, 여기서는 주로 차세대 제품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1989년 9월, 크레이 컴퓨터 사는 CRAY-2의 후속기종인 CRAY-3(개발 예정)을 발표했다. CRAY-2가 4대의 프로세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CRAY-3에서는 클럭주기 2 나노초인 16대의 프로세서를 연결, 최대처리속도 16기가 플롭스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CRAY-3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갈륨비소칩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종래의 실리콘칩에 비해 처리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발열량이 적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갈륨비소칩은 실리콘칩에 비해 온도에 의해 동작이 불안정해지기 쉽지만 CRAY-3에서는 CRAY-2와 마찬가지의 냉각장치를 사용, 이 문제를 해결할 예정이다. 또한 CRAY-3의 외형은 CRAY-1, CRAY-2와 마찬가지로 8각 기둥이며 직경 약 70cm, 높이 약 1m 정도의 크기로 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의 발표에 의하면 갈륨비소칩의 안정성에 문제가 있어 1990년 중반의 출하예정이 늦어질 전망, 참고로 클럭주기 2 나노초라는 것은 빛조차 60cm 정도밖에 도달할 수 없는 거리를 말한다. 한편 CRAY-3와 같은 차세대 슈퍼컴퓨터 개발을 목표로 하는 크레이 컴퓨터사에 비해 보다 일반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크레이 리서치사는 X-MP, Y-MP의 후속기종을 개발 중에 있다. 이것은 16대의 프로세서(클럭주기 4 나노초)로 최대처리성능은 24기가 플롭이라고 발표했다.
불붙은 슈퍼컴퓨터 개발경쟁
현재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슈퍼컴퓨터의 수요가 날로 증가하고 있어 각 컴퓨터 업체에는 슈퍼컴퓨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89년 4월, NEC(일본전기)는 슈퍼컴퓨터 SX-3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최대 4대의 프로세서로 구성되었으며 최대 처리성능은 22기가 플롭이다. 또한 후지쯔도 4대의 프로세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최대 처리성능 16기가 플롭의 슈퍼컴퓨터를 개발 중에 있다고 한다. ‘크레이’ 박사와 CRAY 시리즈의 역사는 그대로 슈퍼컴퓨터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멀티프로세서나 갈륨비소칩 등의 새로운 기술에서 보듯이 항상 최첨단 기술 도입에 앞장서는 슈퍼컴퓨터의 존재는 대단히 커 앞으로 치열한 개발경쟁 속에서 CRAY 시리즈가 어떠한 역할을 할지 자못 궁금하기까지 하다.
CRAY 시리즈는 슈퍼컴퓨터의 역사를 함께 걸어온 상징적인 존재로, 앞으로도 첨단 기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CRAY 시리즈가 보여줄 새로운 혁신이 더욱 주목됩니다. CRAY의 도전과 성취는 슈퍼컴퓨터의 미래를 밝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