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선진 기술은 대부분 해외에서 공부를 하던 분들에 의해 점차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교육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외국에서 선진 문물을 공부하고 우리나라로 가져와서 연구를 지속한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기술이 지금의 수준을 유지하며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높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로봇 응용공학의 혁신인 이형부품삽입 로봇 시스템 개발
“복잡한 모양의 전자회로 부품을 회로판에 꽂고 자동으로 납땜까지 하는 산업로봇이 국내에서 개발되었다.” 지난달 신문에 실렸던 기사 내용 중의 일부이다. 첨단 과학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부족한 우리들이 이 기사 한 줄이 갖는 진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공장자동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번 개발이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와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기계에 불과한 로봇을 실제 현장에 투입할 때 그곳에서 다양한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쓸모 있는 로봇으로 탈바꿈시켜주는 것이 바로 이 기술로서 정식 이름은 이형부품 삽입 및 납땜 로봇 시스템 개발이다. 시스템 개발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박종오 박사를 만나 그간의 어려움과 산업용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훨씬 발전적
“로봇에 대한 개념은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생각과는 다소 다릅니다. 특히 제가 전공하는 분야는 산업용 로봇이라서 멋있는 모습을 갖춘 로봇과는 좀 거리가 있지요. 산업분야에서 로봇의 목적은 인간이 하기 힘든 분야를 대신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모습을 본떠 만드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중에서도 사람의 몸체 전부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에 필요한 일부분만을 본떠 만들게 됩니다. 예를 들면 기계팔과 같은 것을 들 수 있지요.” 박종오 박사가 내리는 로봇의 정의다.
산업용 로봇이 제일 많이 이용되고 있는 나라는 일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는데 총대수가 150000대로 이 숫자로 미국에서 이용되고 있는 수의 두 배나 되는 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1300여 대 정도가 산업현장에 투입되어 활용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럼 지금 활용되는 산업용 로봇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로봇의 세대는 보통 3세대로 나누는데 1세대는 사람이 이동하는 능력을 모방해서 단순히 움직이는 정도의 수준으로 프로그램으로 제어하는 방식이다.
그러다가 무언가 느끼는 로봇이 필요하게 되어 예민한 감각을 지닌 제2세대가 출현했다. 그리고 이제 최종 목표지점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생각하는 로봇으로 사람의 언어를 사용해서도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1세대 로봇을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현재 로봇의 이용이 최고조에 달한 일본에서는 초밥을 만드는 로봇이라든가 로봇 피아니스트 등과 영국에는 조각가 로봇까지도 등장하고 있다.
왜 하필 일본 로봇입니까?
로봇은 인간의 복제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두뇌에 해당되는 역할을 담당하는 부분이 로봇은 컴퓨터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박종오 박사는 오히려 처음부터 로봇을 연구했던 분들보다 유리한 입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컴퓨터에 대해서는 석사과정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첨단 중에도 최첨단이라고 할 로봇 공학의 선구자가 된 그는 기술원에 입학해서 공부를 위해 CYBER에 연결된 터미널이 제일 처음이었다고 한다. 사람의 뼈에 해당되는 부분은 로봇의 기구라고 하는 것이고 로봇의 구동모터는 사람의 근육이고 스마트 스킨은 감각에 해당된다고 설명한다. 책상 앞에 놓여 있던 로봇 사진 액자를 들고 마치 브리핑하듯이 자세하게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진짜배기 과학쟁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철저함 그 자체였다. 로봇의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나서 박종오 박사팀이 개발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이번 시스템은 로봇을 개발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장에 나와 팔리고 있는 로봇을 실제로 산업 현장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라고 한다.
“본래 로봇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프로그래밍되어 컴퓨터가 제어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그러나 공장라인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로봇으로 한 가지 조립만을 하게 하는 것은 낭비가 크다는 인식이 팽배하게 되었고 동일한 로봇으로 종류가 다른 부품을 조립할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들을 갖게 되겠지요.”
새로운 부품 조립을 위해 그때마다 제어 프로그램을 다시 작성한다는 것은 엄청난 낭비임에 틀림없다. 이런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이 시스템은 다른 회사에서 생산한 부품 간의 조립도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아주 용이하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고 한 대의 로봇으로 여러 종류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어 기업체 쪽에서 보면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다.
그럼 간단히 이야기해서 기업체에서 일본에서 생산한 로봇을 구입해다 우리나라 산업 현장에 맞게 응용하는 기술이냐고 다소 무지하게 정리를 하자 “왜 하필 일본에서 생산한 로봇입니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로봇이 현장에 투입되어야 하지요.” 무심하게 로봇 분야는 일본이 앞서 있다는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무의식 중에 예로 들었던 기자는 무안함을 당했다.
독일의 실용주의적 학문태도에 매료되어 시작된 로봇 연구의 길
1955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박종오 박사는 본래 인문계 쪽에 뜻이 있어 문과를 진학했었다. 그러나 중간에 바꿔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로 진학했다. 왜 진로를 바꾸었느냐는 질문에 다소 멋적이 하면서 “뭐 꼭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라는 대답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한국과학기술원 석사과정 기계과를 졸업하고 국비장학생으로 서독 슈투트가르트 대학 IPA연구소로 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을 다녀온 후 그는 3년 전부터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석사 때는 컴퓨터를 이용한 최적설계를 전공한 그가 로봇 박사가 된 것은 서독으로 유학을 간 것이 계기였다. 본래부터 로봇에 관심이 많으셨냐고 묻자 “아닙니다. 대학이나 식사 과정 때도 친구가 로봇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자료를 뒤적이는 것을 봐도 로봇에 대해 공부를 하나보다 정도였지요.” 그런데 어떻게 로봇 박사가 되었느냐고 묻자 자기 앞날에 대해 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럼 기자분은 대학 다닐 때 잡지사에 와서 이렇게 사람 만나고 다니면서 글 쓰게 될 줄 아셨어요.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도 로봇은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별 관심도 없었지요. 본격적인 관심을 쏟게 된 건 독일에 유학을 갔을 때지요. 주변에서 연구하는 것이 거의 로봇에 대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독일의 특징인 독일은 학교와 업체의 협조체제가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고 연구결과가 산업현장에서 실제로 활용되는 바로 그때 모든 연구가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 가장 필요하고 실제 이용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산업용 로봇에 대해 연구하기로 결정했다는 박 교수였다. 이런 생각은 신조처럼 되어서 그를 산업 현장으로 직접 바쁘게 뛰어다니도록 만들고 있다. 실무자들과 많은 접촉을 통해서 현재 산업 현장에서 제일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을 연구 아이템으로 선정한다. 이번 결과도 부품 삽입문제가 큰 문제임을 안 후에 나온 결과물이고 시스템은 이미 실험단계를 거쳐 삼성의 공장 라인에 투입되어 있다.
언제나 두꺼운 점퍼를 동반한 삶
그를 만나려고 간 곳은 기술원 내의 L3 로봇 관련 연구 건물관이었다. 1층에는 공작실이 자리하고 있어 첨단기술의 메카인 과학기술원답지 않은 분위기를 풍겨 이색적이었다. 목적지는 3211호로 로봇 응용 및 유공압 연구실이다. 박종오 교수가 아침 8시 30분이면 출근하는 곳인데 정상적인 근무 시간은 9시에서 6시까지라고 한다. 그래도 제시간에 퇴근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하면서 웃는다. 남들과는 좀 다른 직장이라 특별히 출퇴근 시간을 지킬 필요성도 별로 못 느낀다는 박 박사는 연구 과제가 쌓여 있거나 연구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는 밤을 새우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한창 더운 여름날이었는데도 그의 책상 옆에는 두꺼운 점퍼가 놓여 있다. 이곳에 처음 들어서면 보이는 것은 서류 파일 안에 보관된 로봇 관련 자료들과 관련 외국서적들 그리고 매일의 스케줄을 알려주는 달력 그리고 귀엽게 생긴 마우스가 딸린 매킨토시 컴퓨터 한 대가 전부이다. 연구용 외로는 주로 워드 프로세서용으로만 컴퓨터를 이용한다는 박 박사는 집에서는 어떤 기종의 컴퓨터를 이용하냐는 질문에 집에는 돈이 없이 아직 못 샀습니다라면서 크게 웃는다. 그래서 연구실에 있던 것을 집으로 잠시 빌려갔었는데 정작 컴퓨터는 아들이 더 많이 사용했다면서 자랑스럽게 매킨토시 안에 저장되어 있는 6살짜리 아들의 작품을 보여준다. 게임도 즐겨한다고 해서 어떤 게임을 주로 하느냐고 물어보니 테트리스란다. 전국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테트리스는 우리나라 수재들만 모였다는 과학기술원에도 엄청난 바람을 몰고 다닌다. 집에 아들도 테트리스를 즐긴다면서 테트리스 열풍 때문에 규칙을 하나 정했다고 한다. 연구실 내에서는 절대 테트리스를 하지 말 것이라는 것이다. 연구활동을 위해 나온 연구실에서 테트리스에 열중하다 보면 시간이 너무 아까워 서로가 정한 불문율이라고 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옆에서 지켜본 박종오 박사는 시간에 대한 관념이 매우 철저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시간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바쁩니다
여가가 있을 때는 어떻게 보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뭐 별로 없습니다. 출근해서 일주일 보내고 나면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니까 특별히 신경 써서 취미생활이라고 할 시간이 없습니다. 전형적인 30대 한국인 가장의 모습일 것이다. 본래 음악 듣는 것은 무척 좋아합니다. 독일에 있을 때는 좋은 음악을 위해 오디오 사는데 돈도 많이 쓰고 했는데 여기 와서는 여간해서 시간이 나질 않습니다. 도대체 어떤 힘이 그로 하여금 로봇에 매달려 그렇게 좋아하는 음악을 즐길 사간을 내기도 힘들 정도로 바쁘게 살도록 만드는 것일까? 과학자로서의 사명감과 우리나라의 첨단기술 수준 향상에 대한 책임감이나 아니면 로봇이 주는 매력이거나 산업현장에 대한 관심일까? 어느 것이라고 딱 집어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책상에 앉아서만 하는 죽은 지식을 연구하는 일은 단호하게 거부하고 자기의 지식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이곳저곳 산업현장을 바쁘게 뛰어다니는 그를 보면서 항상 선구자는 외롭다는 진부한 표현이 생각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당시 산업과 연구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던 분들은 아마도 국내에서 최고 수준에 있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많이 공부하고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을 그분들을 위해 많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