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래도 많이 덜해졌지만 199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는 심각하게 사회문제로 받아들였던 부분이 바로 외국어 사용 부분이었습니다. 우리 경제가 발전하면서부터 외국 문물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러면서 외국어 사용이 무분별해진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로 오히려 외국어와 한글의 혼용에 대한 문제는 그렇게까지 문제로 여겨지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였었습니다.
컴퓨터 교육의 정식 교과목 채택
CPU 혹은 메모리나 플로피 디스크를 비롯하여 포트나 슬롯 그리고 그래픽보드부터 시작해서 옵션이나 모니터 등 컴퓨터 앞에 교육용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판매되고 있는 대기업 중의 하나인 모 제조업체의 상품 광고용 소책자에 나오는 화려한 외래어들의 일부이다. 최근 들어 컴퓨터교육이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되고 크게 생색낼 것은 못 되는 손님들이 놓고 간 낙전수입 일망정 전기통신공사에서는 드디어 고대하던 교육용 컴퓨터를 각 학교 설치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따라서 컴퓨터 교육의 명실상부한 활성화를 기대하던 여러 전산교육 담당자들과 혜택을 받게 될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반가운 마음으로 컴퓨터교육 원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교육에서 필수적으로 공부하게 될 컴퓨터 활용용어가 자연발생적으로 때로는 무분별하게 외국에서 도입된 용어 그대로 우리말화 되지 않은 채 쓰이게 될 것으로 보여 적지 않은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그 용어를 주로 사용하게 될 피교육자들이 아직 우리말인 국어에 익숙지 않은 국민학생 및 중고생들인 것을 미루어 보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으로 더 큰 것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양식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의 산물
물론 컴퓨터가 바다 건너온 문명임을 부인할 길 없고 IBM 컴퓨터의 운영체제인 MS-DOS 식으로 고유명사인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굳이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용어까지 외국어를 남용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컴퓨터 학원을 운영하며 컴퓨터 교육 도서를 발간하고 있는 홍은출판사 대표 유홍준 씨는 베이직 명령어에서처럼 우리말로 바꿀 경우 호환성에 문제가 생기는 사례를 제외한다면 커서나 스페이스 바 등 얼마든지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많다며 키보드를 손 건반으로 고쳐 쓰면 키보드 자체 설명과 곁들여 용이 설명을 해줘야 하는 현재의 불합리한 교육상의 이중 수고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낯선 외래어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기보다 손으로 치는 건반인 손 건반이라고 가르치면 훨씬 이해도 쉽고 교육효율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글 머리에서 인용한 것처럼 각 컴퓨터업체들의 상품설명서를 보면 영어로 된 용어를 아무런 한글화 노력도 없이 마구 사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글을 찾아볼 수 없는 순수 알파벳 광고물도 쉽게 눈에 띄고 있다. 이름부터 외국어인 매뉴얼 등의 사용서에도 외래어 투성이이긴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컴퓨터전문 매체들도 그 한몫을 거들어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컴퓨터 교육이 외국어 교육이 돼서는 안돼
따라서 컴퓨터교육을 직접 받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최고의 고역은 어려운 외국어인 용어를 파악하는 일이 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추듯 십여 종이 넘는 컴퓨터 용어 사전이 시중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고 각 컴퓨터잡지 매체들도 앞다투어 용어집을 내놓고는 있다. 그러나 용어 사전들이라고 하는 것들도 영어인 어떤 말의 줄인 말이라는 식으로 차라리 집 위에 또 집을 짓는 목상목을 만들고 있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984년부터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며 한글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한 컴퓨터연구소의 강대진 씨는 앞으로 컴퓨터가 대중화될 것에 대비하여 아름다운 우리말을 컴퓨터 용어 화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사업 중의 하나라며 지금까지는 컴퓨터 보급율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외국의 신기술 습득에만 열을 몰린 나머지 용어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회고하면서 컴퓨터가 소수의 특정 그룹에서 누구나 사용하게 되는 이제야 말로 한글화 작업이 필요한 시기이며 정부 차원의 국책 과제로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일본어와 한자도 유의해야
그는 특히 한글화와 한자화를 구분해야 하며 일본어식 줄임말도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많이 쓰고 있는 검색이나 치환들도 따져보면 일본에서 수입한 말이고 우리식으로 하면 찾기나 바꾸기가 된다. 그러나 한글화가 그렇게 단순하지 만은 않다. 당곡 고등학교 전산담당교사인 정 욱 씨는 철저한 한글화를 이루려면 용어만 바꾸어 쓸 것이 아니라 키판을 우리 식인 3벌식으로 바꾸는 등 보다 본질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이미 정착된 용어의 선별이라든가 우리말 화한 결과가 너무 길어지거나 우스꽝스럽게 되어 오히려 사용 상에 제약을 주는 경우들은 신중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컴퓨터는 소비재보다 생산재에 가깝다. 이 말은 컴퓨터 용어가 일시적으로 우리에게 머물다 떠나는 유행어가 아니라 계속해서 살아있는 생활어로 우리 주위에 정착될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도스 명령어를 자국어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으며 대만의 경우 컴퓨터를 전뇌기라고 용어를 바꾸어 전기로 움직이는 생각하는 기계로 쓰고 있을 정도로 더 큰 것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 문화부 조사에서 학용품의 70퍼센트가 외국어를 상품명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컴퓨터도 이제 학용품이라 불러도 별로 어색할 것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그만큼 청소년들에 미치는 영향력도 점점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이 시기에는 이중 교육에 대한 걱정을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글로벌 시대에 외국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같은 용어로 배우고 같은 용어로 인식하는 것이 더 편리한 일이라는 것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한글이 중요하고 우리말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