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형.. 먼길 흥겹게 떠나시구려..
2007/06/05 08:34
영호형과의 첫 조우는 대학 1학년 때인 88년 여름 농활때였다.
농활이 거의 끝나갈 무렵, 형은 우리를 찾아 왔다.
선배들이 우리 동아리를 만든 선배라며 소개를 해주었고, 모습을 바라본 나는 예인의 느낌을 가졌다.
웨이브진 긴 머리, 거칠어 보이는 수염, 작지만 어딘가 단단해 보이는..
그 중에서도 형의 얼굴은 그 자체가 하회탈을 쓴 듯한,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모습이었다.
서울대 80학번이면서, 우리 학교 87학번으로 다시 입학했지만 학업에는 뜻이 없어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그리고는 87년 우리 동아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등은 1학년 새내기인 나와 동기들에게는 전설적인 느낌 그 자체였다.
탈춤 그리고 생활..
농활을 마치고 서울로 다시 돌아온 이후로, 우리는 영호형으로부터 남은 방학 기간동안 내내 탈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87선배들과 동기들, 그리고 노래패 동기들과 같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정도까지 여름 뜨거운 땡볕 아래서 한달 정도를 형과 함께 지냈다.
빈 속에 막걸리를 밥 삼아 가며, 탈춤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고 체력소모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면 바로 술집으로 향해, 변변치 않은 안주에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며 삶과 풍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한 생활이 15일 정도 지난 즈음, 전농동 철거촌에 놀이방이 개설이 되어 길놀이와 고사를 지내기 위해 찾아 가게 되었다.
길놀이를 하며 철거촌을 한바퀴 돌고 난 뒤, 고사를 지내기 위해 잠시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갑자기 영호형이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우리는 동네 주민의 도움으로 온몸을 주무르며, 형을 병원으로 옮겼다.
형이 없는 어수선하고 불안정함 속에 고사를 지냈고, 같이 병원으로 간 선배의 말을 통해 안스러운 말을 들었다.
병원에서 의사가 하는 말이, 영호형의 상태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라 한 것이다.
하긴 우리는 늦은 밤이라도 집으로 들어가 아침이라도 먹고 나왔지만, 서울에 일정한 거처가 없던 영호형은 순전히 학교에서 마시는 막걸리와 술이 전부였던 것이다.
선배들과 우리들은 이러다가는 영호형에게 큰일이 나겠다 싶어, 그 날 이후로 탈춤 연습이 끝나면 바로 술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콩국수로 요기를 때우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술집으로 가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술.. 인생..
영호형이 다른 선배와 화실을 꾸미기 위해 이틀 동안 작업하면서 둘이 소주 100병을 마셨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어떻게 그렇게 마실 수가 있는지 의아해 하니, 그냥 일하면서 음료수 마시듯이 했더니 나중에 쌓여 있던 술병이 100개 였다는..
술이 취하면, 주섬 주섬 이것 저것 챙겨 주었던..
특히 생맥주 집에서는 500cc 맥주잔을 우리들의 가방에 마구 넣어 놓고선, 우리가 술 엄청 팔아 주니 가져가도 괜찮다며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웃던 모습들..
나도 모르게 집에와서 보면 가방안에 2~3개의 맥주잔이 들어 있었다.
친구들의 생일날 받은 꽃다발의 장미꽃잎을 너무나 맛있는 표정으로 하나씩 씹고 있는 형에게 맛이 어떠냐며 물어보니, 직접 먹어보라며 건네준 꽃잎을 먹었을 때 그 떫은 맛이란..
지금은 문화부장관으로 있는 김명곤 씨가 운영하던 극단 '아리랑'의 단원으로 형이 있을 때, 대학로로 연극 공연을 보러 갔던 일..
영화 '서편제'에 1인 4역으로 출연 했을 때, 영화를 보며 형을 찾던 기쁨..
평생 결혼할 수 있을까 하던 생각을 갖던 때에, 95년 어느 금요일 오후에 결혼을 해서 참석하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흥겹게 가시구려..
내가 부르던 박남정의 '아! 바람이여'의 발라드 버전과, 내가 치던 신명난 북소리를 좋아 해주었던..
그 누가 형처럼 나의 그런 모습을 좋아 해줄 수 있을 지 모르겠수..
마흔다섯의 짧은 삶 속에,
그 보다 더 짧았던 형과 나와 우리와의 인연속에,
형의 모습은 '흥'으로서 남아 있을 거외다.
잘 가시구려..


아리랑이면 연분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흥겹게까지야 하겠습니까. 물론 산다는게 고행의 길이니 그보다는 낫겠지요..
벌써 2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슴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제는 삶의 길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운 듯 합니다. 쩝..